@mdjsjdq
2018-01-06T14:39:26.000000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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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같은 흥행몰이
宵宵
宵지난 8월 14일은 세계 위안부의 날이었다.특별히 이 날에 맞춰 개봉된 중국 영화 '22'는 중국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생애를 다룬 기록영화로, 중국 관중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고있다.
영화는 개봉 첫날만에 당초 목표였던 '600만위안'수입을 돌파하여 1천만 위안 수입을 올렸고, 사일째인 17일 낮 12시 '22'는 누적 매출액 4863만 위안(약 82억원)을 기록했다. 상영 첫날 1%였던 좌석 점유율도 이틀부터 15%이상을 차지, 올해 최대 박스오피스를 기록중인 잔랑2를 위협하고 있 다. 제작비가 5억원에 불과한 이 영화는 개봉 2주만에 1억6천500만위안(한화 280억원, 8월28일 기준)을 벌어들이며 중국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역대 최 고의 흥행 실적을 올리고 있다. 영화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겪은 고통스러운 역사를 자세하게 되짚기 보다는 그들의 일상생활을 비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익을 목표로 한 단순한 상업영화 가 아니다면서 상영수익 일체는 상하이 사범대학 중국위안부문제 연구소 (上海师范大学中国“慰安妇”问题研究中心)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모두가 외면한 제작비용은 영화배우 장신이(张歆艺)가 개인적으로 100만 위안(1억7천만원)을 출자하여 초기 촬영비용의 부담에 한숨을 돌렸다. 2015년 8월 촬영을 끝내고 1년여의 편집과정중 다시 제작비용의 문제에 부닥쳤다.
궈감독은 2016년 4월 개봉된 동일한 주제의 한국의 '귀향(鬼乡)을 보고난 후, 충격과 영감을 얻었다. 궈감독은 귀향의 제작비 충원방식인 '크라우드 펀딩' 방식을 활용하기로 했다.
단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32,099명의 일반 후원자로부터 100만 위 안의 제작비를 모금받았고, 한국 영화 '귀향'처럼 이름이 확인된 투자자 7,000명의 성명이 엔딩 크레딧에 올랐다.
궈커 감독에게 영화 '22'는 두번째 영화이다. 2012년에 제작한 단편영 화"32"가 그의 데뷰 작품인데 이 영화 역시 위안부 영화이다. "32"는 92세 인 위안부 할머니 웨이사오란(韦绍兰)과 위안부 복무시절 일본 군인에게
강간당한 후 낳은 일본인 혈통이 섞인 아들 뤄선쉐(罗善学)에 대한 이야기 를 재구성한 것이다. 웨이할머니는 이번 "22"영화에도 출연했다.
2012년 중국 당국이 최초로 위안부 출신이라고 공개한 32명이 2년도 채 지나지않는 2014년 생존자가 22명으로 줄어들면서 궈감독은 생존해있는 위안부 할머니 22명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촬영하 기 시작했고, 영화 제목도 당시 생존자 22명인 것을 나타내기 위해 '22'라 고 지었다. 궈 감독과 스태프는 중국 내 5개 성(省)을 돌면서 위안부 할머니 들의 일상을 담담한 색채로 그려냈고, 투자자들이 흥행을 위해 반일감정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스러운 부분을 담아내라는 주문을 거부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할머니들 개개인의 평범한 현재의 삶 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영화는 할머니들의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해 후베이성의 마오인메이(毛银梅), 하이난성의 린아이란(林爱兰), 리메이진(李美金), 산시성의 리아이롄(李爱 连)등 주로 4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상생활들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요 리하고 청소하는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후베이의 마오인메이(毛银梅)는 한국인 박차순(朴车 顺) 할머니이다. 박 할머니는 19세이던 1942년 중국 내 일본군 점령지역 에 끌려가 해방 전까지 난징(南京)·한커우(汉口)·우창(武昌) 등지의 위안소 에서 고초를 겪었다. 박 할머니는 위안소를 벗어난뒤 후베이(湖北) 샤오간 (孝感)시에 정착하여 마오인메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서 생활하다 고향으 로 돌아오지 못한 채 올해 1월 8일 별세했다.
1931년부터 45년까지 일본군에 의해 성노예로 끌려간 중국인 위안부는 2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나 상당수가 신분을 밝히지 않아 정확한 생 존자 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영화 촬영 당시인 2014년 '22'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은 촬영하는 과정에 생존자는 9명으로 줄었고, 상영을 이틀 앞둔 12일 하이난의 황유랑(黄有良) 할머니도 세상을 떠나면서 단 8명만이 생존 해 있다.